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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깔때기어록' 유감

2013-06-07 입력 | 기사승인 : 2013-06-07

 지난 6월3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즈음해 청와대는 참 희한한 자료를 하나 내놨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어록'을 이름패로 달고 있다. 그리고 ['손톱 밑 가시', '깔때기' 등 순 우리말 사용으로 이해하기 쉽게]라는 부제까지 붙여져 있었다.

 

 현직 대통령 취임 100일만에 무슨 생뚱맞은 '어록' 타령인가? 우리말 사전에 '어록'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①위인들이 한 말을 간추려 모은 기록 ②유학자가 설명한 유교 경서나 스님이 설명한 불교 교리를 뒤에 제자들이 기록한 책 ≪근사록≫, ≪전습록≫, ≪임제록≫, ≪주자어록≫ 따위가 있다. ③중국 송나라 때, 학자들이 후진의 교도(敎導) 및 편지에 필요한 당시의 속어를 수집하여 구어체로 기록한 책 등. 물론, 대통령이니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위인' 반열에 낄 수 있고, 따라서 흠될 바 없다면 굳이 할 말은 없을터다.

 

 하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순 우리말로 칭송까지 한 '깔때기'가 끼어있다는 점이다. 깔때기라는 우리말과 관련, ≪인수위 고용복지분과 토론회에서, '복지체감도가 중요하며 깔때기 개선해야' 지적. 즉 각 부처에서 복지정책을 쏟아내도 현장에서 복지업무를 집행하는 사회복지사가 부족해 수혜자들에게 혜택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것을 지적≫이라고 이 말이 나온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회복지계에서 자주 회자되던 이른바 '깔때기 현상'이 갑자기 대통령의 어록에 등장한 것도 이상하지만, 대통령의 어록에까지 등장한 깔때기가 아직 여전하고, 나아가 그 깔때기가 벌써 여러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데도 아직 제대로 된 처방이나 대책은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다는 현실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부터 직접 챙긴 깔때기는 각종 복지사업을 일선 현장에서 수행하는 각 지역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산더미같은 일에 짓눌려 신음하는 현실을 비꼰 것이다.

 

 이들 사회복지 공무원이, 아니 크게 보면 사회복지사 직종의 모든 현장 활동가들이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올 들어 벌써 4명이 과중한 업무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기점으로 정치권에서 불기 시작한 '복지 바람'은 포퓰리즘 논란 속에 '복지 확대'라는 돌연변이를 낳았다. 복지가 국가정책의 큰 틀로 자리 잡고 있는 이면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복지업무가 일선 사회복지사들을 옥죄고 있다. 할일은 많은데 일 할 사람이 적어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쉽게 깔때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복지 공무원의 연쇄 자살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31일 경기도 용인에서 29세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투신한 데 이어, 2월26일에는 경기도 성남에서 석 달 뒤 결혼할 여성 사회복지공무원이 자신의 몸을 던졌다. 3월19일에는 울산에서 어린 자녀를 둔 30대, 5월15일에는 충남 논산시청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이 이같은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은 국민의 복지수요가 급증하면서 정부부처의 각종 사회복지업무가 집중돼 업무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지 깔때기 현상'이다.

 

 당장 올해부터 무상보육을 비롯해 교육청 초·중·고 교육비 신청 및 관리, 각종 바우처 업무 등이 신설됐다. 처음에는 기초생활수급자만 대상으로 하다가 점차 일반 노인, 장애인까지 확대되고 최근에는 양육수당 도입, 학비지원 등의 사업까지 떠맡다보니 업무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담당자에 대한 쥐꼬리 인력 증원은 폭증하는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최근 5년간 복지정책은 45%, 복지제도 대상자는 157.6% 증가한 반면 사회복지 공무원은 고작 4.4%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대부분이 여성(74%)인 복지공무원의 육아휴직 충원 실적도 67% 정도에 그쳐 정원에 비해 실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정부가 사회복지 담당 업무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도입한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 e음)이 '전산망 입력'이라는 또 다른 일거리를 제공,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좀더 자세히 실태를 들여다 보자. 현재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안전행정부, 국토부, 산업부, 농림부, 문화부 등 16개 부처에서 모두 292개 복지사업을 벌이며, 이 중에서 197개 복지사업(67%)을 지자체 주민센터로 떠넘겨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 일선인 읍면동 주민센터의 인프라는 이 많은 일을 쳐내기에 말그대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현재 전국에는  2073곳의 주민센터(1곳당 평균 2만명 거주)가 있으며, 주민센터 1곳당 공무원은 12명이다. 이 중 복지담당은 3.2명(복지직 2명+행정직 1명) 밖에 안된다. 게다가 복지직 공무원이 단 한 명뿐인 주민센터도 무려 582곳(28%)에 이른다.

 

 복지업무 담당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현장의 복지 공무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상황 변화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보통 복지공무원 혼자서 200~400여 가구의 수급자를 챙기는데다, 자활지원, 교육급여, 모자관리, 소년소녀가장, 결식아동, 보육료 관리 등 각종 복지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업무량 뿐만이 아니다. 근무환경도 여러가지 위해 요소에 노출돼 있다. 수급자격 탈락과 같은 일부 불만을 품은 일부 민원인은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뺨 맞는 것은 기본이고, 흉기에 찔리거나 방화에 의한 화상 피해를 입는 등 갈수록 폭력이 흉포화하고 있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사회복지사가 겪고 있는 이같은 고통으로 사회복지 전달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려지고 있다.

 

 뒤늦게 지난 5월14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사회보장위원회를 열어 읍면동 주민센터가 국민에게 원스톱 통합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질적인 '사회보장 서비스 거점 수행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주민센터를 '지역 복지 허브'로 개편하기로 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선 모양을 보이기는 했다.

 

 무엇보다 복지공무원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사회복지인력을 대폭 늘린다는 계획에 따라 2014년 3월까지 복지담당 공무원 7000명을 조기에 확충하기로 했다는 점은 현재의 문제핵심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사회복지계 깔때기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야말로 오판이다. 적재적소에 맞는 인력배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복지 업무 특성에 맞는 제대로 된 시스템 분석(System Analysis) 아래 사회복지기관들과 행정조직의 원할한 업무분장 및 그에 따른 처우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대통령 취임 100일에 즈음해 어록으로 정리한 대통령의 치적을 널리 알리려는 아랫 사람들의 심정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깔때기를 그 어록에까지 등재할 요량이었으면, 더군다나 순 우리말로 자랑까지 하고 싶었으면 사회복지계가, 국민 모두가 만족할 만한 처방전까지 들고 나왔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의 어록이 죽은 말이 아닌, 살아서 빛을 발하는 말로 인구에 회자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편도욱 편집국장(solripan@ibok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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