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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숙] 행복한 ‘생선 할아버지’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행복한 ‘생선 할아버지’


조건, 상황, 가진 것과 상관없이 마음이 행복한 사람의 참모습


“우리 동네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는데 쓰레기더미 속에서 씻지도 못 하고 엉망으로 지내고 계세요. 밥이라도 제대로 드실 수 있게 도와주세요.”


동네 이장님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어르신의 사정을 설명하시면서 걱정 반, 난감함 반. ‘이런 사람도 도와줄 수 있지요?’ 하고 기대 어린 눈빛을 보내셨다. 그렇게 1999년 6월, 초여름에 어르신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어르신은 남의 밭 한 귀퉁이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에서 지내고 계셨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고, 살림살이라곤 이불 한 채와 옷가지 몇 벌, 그나마도 쓰레기들과 뒤엉킨 채 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어르신, 그동안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이것저것 해서 먹고 살았지요, 뭐.”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시는 어르신과 달리 댁을 찾아간 복지사와 나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부엌이 없어서 어디서 주워온 전기밥솥에 씻지도 않은 쌀과 생선 대가리 몇 개, 집 마당에서 자란 푸성귀를 한데 넣고 익힌 것이 한 끼 식사라고 하셨다. 밥그릇은 물론 도마나 칼도 없어서 빗물에 흙만 겨우 씻어낸 무를 이로 베어 물어서 전기밥솥에 넣으셨단다. 그래도 한 끼 든든하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신다. 냄비 서너 개가 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뚜껑을 열었더니 썩은 생선에서 허여멀건 구더기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엄마야~!!”

직원이 내동댕이친 냄비에서 구더기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온다. 직원은 기겁하는 데, 어르신은 뭐가 좋은지 ‘흐흐흐’ 웃으신다. 사람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니 사람 사는 것 같아 좋다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신다. 그렇게 첫 만남에서부터 어르신은 우리를 웃기고 울리셨다.


‘슬하에 딸 하나가 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 가닥 모르고, 이렇게 혼자 산 지 10년은 되었소. 늙은이가 혼자 이러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도 답답했는지 빈집도 내어주고, 밭 한 귀퉁이에 푸성귀라도 키울 수 있게 해주어서 여태 살아왔소’ 하고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담담하다.


“누가 쌀이라도 한 줌 주면 그거 받아서 아껴 먹지. 생선은 어시장 가서 한 토막 사면, 머리는 달라는 대로 준다” 며 “폭폭 끓여서 먹으니 배탈은 한 번도 난 적이 없다”며 빙긋 웃으셨다.


처음부터 수도는 없어서 처마 밑 고무통에 빗물을 받아서 쓰신다고 했다. 화장실 역시 밭에 구덩이를 파서 쓰신다고.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씀하신다. 당연히 빨래는 엄두도 못 내는 일. 옷가지는 먼지와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쌓여있었다. 언제 목욕을 했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르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지역봉사단체와 함께 화장실을 만들어드리는 것이었다. 매일 꾹꾹 눌러 담은 도시락을 배달하고, 물은 생수를 사다드렸다.


처음 오는 봉사자가 어르신 댁을 방문하고 나면, 어김없이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선다.


“세상에 아직도 그런 집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았다. 주말마다 39사단 장병들과 한국전기연구원 봉사자들이 방문하여 어르신을 모시고 목욕을 다녀왔다. 처음 목욕탕에 모셔갔을 때는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 장병 하나가 자기 속옷을 벗어서 입혀드리고 왔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혼자 계시는 동안 적적하실까 봐 돌아가며 한 번씩 찾아가는 봉사자마다 번번이 생선 냄비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그때마다 어르신은 웃으셨다. 그래서 한국전기연구원 봉사자들은 어르신을 ‘생선 할아버지’ 라고 불렀다. 수도가 없어서 이웃의 도움으로 물을 받아놓고 사용했다. 주말마다 찾아가서 열심히 청소하고 빨래를 해도 사흘을 못 갔다. 어르신은 그래도 좋다고 웃기만 하셨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고맙다고 인사하시던 어르신은 어느 날 큰 결심을 하셨다. 매달 나오는 생계비를 장판 밑에 깔아두시고는, 우리가 찾아왔을 때 ‘사람이 공짜를 바라면 안 되지. 나를 염치없는 늙은이로 만들지 말아달라’ 며 지폐를 내미셨다. 깜짝 놀란 우리는 ‘이런 돈 아껴서 고기 사드시고, 좋은 음식을 드셔야 해요’ 라며 지폐를 다시 어르신 손에 쥐여 드렸다. 이렇게 실랑이를 하며 지폐들이 장판 바닥을 수없이 오갔다.


누가 오든 반기고 웃어주시는 생선 할아버지는 청소년 봉사자에게 지나온 세월을 흥이 나는 이야기로 들려주셨고, 음정, 박자 다 무시한 리코더 연주도 자주 들려주셨다. 이웃들 벌초를 대신해 주고 삯을 받아 무엇을 했노라고 곧잘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렇게 재미난 어르신으로 이름이 났던 어르신은 배탈 한 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셨다. 하지만 2015년 5월, 어버이날 행사를 손꼽아 기다리시던 어느 날, 어르신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말았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마지막 여행을 떠나셨다.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시던 분이었지만, 한 번도 웃음을 잃으신 적이 없었던 어르신이셨다. 처음엔 잘 몰라서 눈살을 찌푸리며 들어갔던 사람들도 나올 때는 얼굴 가득 웃음을 달고 나오게 만들어주는 분이었다.


조건, 상황, 가진 것과 상관없이 마음이 행복한 사람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어르신. 우리는 그저 어르신의 생활 형편을 도왔을 뿐, 오히려 할아버지에게서 참된 만족에 대해 배웠다. 저 하늘에서도 ‘흐흐흐’ 웃고 계실 생선 할아버지가 오늘따라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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