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님,
무등이왓 억새잎이 일렁이니 그 뜰을 거닐고 있나봅니다.
아침 안개가 내 텃밭에서 밀려가나 했더니
그때 이미 님은 발자국도 없이 게까지 가셨네요.
부드러운 손길로 꽃들을 어루만져,
민들레 솜털을 가벼이 날려 영토를 넓혀주고
다 누르지 못한 무등이왓 설음을 어루만져주고 님은 자유로운듯
그러나 여정을 재촉하듯 언덕을 넘어가네.
오늘은 서녁에서 동녘으로, 내일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시나
내 이마라도 한 번 짚어주실지.
내 뜰에 잠시 머무르며
여린 황매잎이라도 흔들어 주신다면
님이 내게 발걸음 해주심에 눈물로 두 손을 모으리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고 있지만
내 곁을 스치는 듯하던 그때 그 무렵 이후는
나뭇잎도 구름도 멈춰서 있어서
어디를 돌아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가 없어
형제섬 잔물결을 봐도 그 바람의 발자국이 안 보이네
오래 전 그 바람의 색깔도 선하고
오래 전 그 바람의 향기도 생생한데, 지금은 오감이 작동되지 않아
어느 것 하나 느낄 수가 없네요.
나는 또 다시 회상하며 오감에 불을 지펴 바람의 흔적을 ?"어보려 합니다.
이미 먼발치로 흩어져버린 바람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