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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옥] 여보시오, 거기 누구 없소?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여보시오, 거기 누구 없소?


“내 집에서 늘 만나는 이웃들이 있는 이 지역에서 편히 살다가

잠자듯이 저세상 가는 게 노인네들 꿈이지.”


“내 집이 있고, 늘 만나는 이웃들이 있는 이 지역에서 편히 살다가 잠자듯이 저세상 가는 게 노인네들 꿈이지.”


“어르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꼭 실현될 거예요.”


센터 사무실 앞 평상에 앉아 이야기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나는 포용국가, 커뮤니티 케어의 이상과, 현재 정부가 내놓고 있는 정책들에 관해 설명해드렸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꿈이 실현되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어르신들 몰래 한숨을 내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며칠 전, 한 어르신을 상담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까지 해드린 일이 있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촘촘히 구축되어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래도 현실의 노인복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 어르신은 84세로, 보은에서 나고 자라다가 20대에 이웃 마을의 농사꾼과 중매로 결혼하여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오셨다. 땅 한 뼘도 없이 시작했지만 부부가 모두 부지런하여 집과 논밭을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로 살다가 남편과 50대에 사별하셨다고 한다. 이후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했다.


‘내 평생 복이 많아 이렇게 지낸다’ 며 자랑하시던 어르신 말씀처럼 자녀들도 잘 자라 장남은 대전에, 둘째와 셋째는 서울과 수원에, 딸은 보은에서 각자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어르신도 별 탈 없이 혼자 생활하시면서 최근에는 주말농장처럼 고향에 사둔 논밭을 큰아들과 오가며 농사에 새로 재미를 붙이셨다. 동네 경로당에서 봉사활동이나 여가활동을 하며 친구들도 많이 사귀셔서 노후 문제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 분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센터로 전화가 와서 찾아뵙게 되었다. 어르신은 10여 년 전에 척추에 문제가 있어 3번에 걸쳐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전혀 낫지를 않고 해가 갈수록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3차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처방해준 진통제만 계속 먹고 있는데, 이제는 약도 듣질 않아 혼자 생활하기가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우선 장기요양서비스를 소개해 드리고, 어떻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절차를 설명해드렸다. 가장 가까이에 사는 장남에게도 연락하여 현 상태로는 혼자 생활하시기 힘드니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해보자고 권했다.


전화를 받은 장남은 지난 휴일 만해도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는데 며칠 사이에 상태가 나빠지셨느냐며, 그때 왜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서운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곧바로 보험제도 이용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모르니 많이 도와달라며 감사와 당부를 해왔다.


전화를 끊고 자식들에게 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지 여쭈었더니, 그러지 않아도 바쁘고 힘든데 내 걱정까지 끼치고 싶지 않았다며, 큰아들이 지금 형편이 많이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모든 부모 마음이 모두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날 바로 공단에 등급신청을 해드렸다.


며칠 뒤, 등급판정을 받게 되었고, 결과만 잘 나오면 방문요양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으니,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하루가 다르게 통증이 심해져서 안방에서 부엌까지 기어 나와서 겨우 싱크대에 기대어 국을 데우고, 밥통의 밥을 말아서 엎드린 채로 식사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평일에는 이웃들과 경로당 친구들이 매일 찾아와서 점심 식사와 방 정리를 해드리고, 주말에는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집안일을 도왔지만 아침이 문제였다.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게 된다고 해도, 아침 일찍 와서 식사를 챙겨줄 요양보호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약을 먹지 않으면 통증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 도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아침을 드셔야 해서 당장 아는 분에게 수고비를 드리면서 아침식사만 챙겨달라고 부탁했으나 며칠은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해드리기는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다.


등급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 바엔 죽어버리고 싶다고 우시는데,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가며 목이 빠지게 장기요양인정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인정신청결과통보서를 받게 되었지만, 결과는 노인돌봄서비스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늘 반복되는 문제였다. 하반기부터 노인돌봄바우처 예산이 없어 새로운 대상자를 받을 수 없다는 지자체의 입장 때문에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어르신 혼자 생활하게 둘 수가 없어 결국 큰아들과 요양병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혼자 생활할 수 없을 때는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으면서 자신의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지만,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어디 이 어르신 한 분뿐일까?


80세가 넘으신 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몸 상태가 악화하고, 건강하게 혼자 사셨던 분이 며칠 사이에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분들에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알게 되었다.


○○○ 어르신은 60평짜리 이층집이 있고, 보은에 토지도 얼마간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은 전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미 모든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준 상태였고, 수중에는 2층 전세금으로 받아둔 5천만 원뿐이었다.


자신이 아픈 것보다 ‘이 돈이 다 없어지기 전에 저세상 가야할 텐데.’ 라며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면 어떡하나’ 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동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장기요양보험은 아프기 전에는 신청해도 소용없다’ 며 ‘이미 병들어서 힘들어져도 신청하면 빨라야 한 달 뒤인데, 그 시간 동안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다’ 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안심하고 지내려면 다양한 노인복지서비스가 필요한데, 현재 지역사회를 들여다보면 이웃이나 친구, 자녀들에게 의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공식적·비공식적 서비스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 서비스가 단절되는 경우가 이처럼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장염과 감기몸살로 2주 정도 호되게 고생을 했다.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이대로는 큰일이 날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로 여의치가 않았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 하나?’ 라며 이럴 때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봉사시간 예금통장’ 같은 개념은 어떨까? 자기 지역에서 필요한 봉사를 하고 이 봉사시간을 예금해 두었다가 자기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사실 몇몇 지역에서 시도했던 적이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지속은 되지 못 하고 있다), 일반 노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등록된 봉사자가 제공해주는 유료서비스사업(식사서비스, 집안 청소, 산책친구 등)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사업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여보시오, 거기 누구 없소?”라고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올 뿐, 손을 내미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지금의 현실이 과거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이 나와 우리를 위한 진정한 복지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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