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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남] 내 과거를 묻어주세요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내 과거를 묻어주세요


엄청난 비밀을 혼자 삭히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던 것 같다.


…삐그덕.

조심스럽게 상담실 문이 열렸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기라도 하듯 주위를 살피며 살그머니 들어오는 낯선 할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렵게 들인 걸음은 상담실 소파 끝자락에 겨우 안착하였다.


우리 시설에 계신 분들은 기초수급자는 아니지만, 형편이 썩 좋지는 않은 일반 노인들이 입소하는 실비 양로시설이다. 편할 이유도 없지만 불편할 이유도 없건만, 조심스러운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면서,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길 기다렸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건강 관련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니 그제야 좀 안정이 되셨는지 천천히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들을 차분히 주고받던 중, 한 가지 약속을 꼭 해달란다. 긴 인생을 살면서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약속 하나가 어려울까 싶어 그러겠노라 답하니 그제야 본인의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놓으신다. 할머니가 지키고 싶던 비밀은 할머니의 과거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갔다 온 사실을 본인 돌아가실 때까지 비밀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면서도, 무료로 갈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굳이 이곳까지 오셨냐고 여쭸더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다가 여생을 마치고 싶단다. 일단 할머니에 관한 사실은 비밀로 해 드리기로 하고 그날부터 우리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전입신고를 하고 얼마 후 일본군 강제위안부 관련 단체에서 할머니를 만나러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다른 어르신들이 눈치 못 채게 먼 친척이 찾아온 것처럼 해서 1년에 한 두 번의 방문이나 관리 차원의 협조를 해 주게 되었다.


위안부 생활 후 일본에서 일본인과 결혼을 하고 그사이에 아들도 하나 있었다며 늘 아들 얼굴 한 번 보기를 소원했다. 마음 같아선 시간을 내어 할머니를 모시고 일본에 가서 아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일본에 있을 때도 아들이 어머니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아들의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일본에 간다고 해도 아들을 찾을 길이 막막할 것 같았다. 하나의 비밀을 공유한 탓이었을까? 사정 모르는 남들이 보면 엄마와 딸 같다고 할 정도로 친근하게 세월을 보냈다.


할머니의 연세가 90이 될 때까지도 함께 하였는데, 연세 탓에 몸이 안 좋아도 병원 가기를 무척 꺼리셨다. 할머니의 의중을 존중하여 돌아가시던 날도 병원에 가지 않고 본인이 살고 계시던 방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건, 할머니의 평소 부탁대로 돌아가실 때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뿐이었다.


장례식장 앞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보낸 3단 화환만이 덩그러니 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조문객 하나 없는 할머니의 쓸쓸한 빈소를 함께 지내던 어르신들과 지키며 삼일장을 치렀다. 장례식이 끝나고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가 나왔는데, 할머니가 위안부로 갔다 온 사실을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 본인에게서 들었다고 하시는데 모두 혼자만 아는 것처럼 비밀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도 본인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엄청난 비밀을 혼자 삭히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대만 알고 있어라’ 하고 몇 사람에게 얘기한 것이 모두가 본인만 아는 줄 알고 비밀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 긴 세월 동안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온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할머니, 하늘나라에서는 비밀을 지키려고 애쓰지 마시고 편히 사십시오. 절대 할머니의 잘못이 아닙니다. 할머니 부디 그곳에서는 편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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