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일반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사회공헌 기획특집
칼럼 복지코너 복지만평 데스크에서 기고/투고 성명서/논평
포토
人터뷰 동정 구인
데이터뱅크
문화 독자마당 공지사항

[조옥자] 100세 인생을 향한 아름다운 동행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100세 인생을 향한 아름다운 동행


친구를 넘어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이제는 가족보다도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이○○ 어르신은 2000년 1월, 우리 복지관에 처음 찾아오셨다. 건강프로그램(물리치료, 재활치료, 한방 치료 등)에 참여하시기 위해 매일 버스로 1시간 정도의 먼 거리를 오가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으셨다. 키도 크고 풍채도 좋으신 데다 점잖고 인상도 좋으셔서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인기가 많던 분이었다.


어느 날은 어쩜 그렇게 인상이 좋으신지, 항상 웃는 얼굴이 멋지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르신은 조심스레 속사정을 꺼내놓으셨다. 어르신의 아드님이 복지관의 물리치료사로 일하셨는데 매일매일 어르신도 아드님을 보러 방문하셨고 나도 매일 복지관 라운딩을 하며 자연스럽게 어르신과 친해지게 되었다.


어르신은 슬하에 아들만 다섯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아내와도 30년 전에 사별하여 주택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집 마당의 작은 텃밭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리 센터의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활짝 웃는 얼굴 뒤에는 무료하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본모습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후 나는 어르신에게 딸이 되어드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사 들고 어르신 댁을 여러 번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우리 센터는 2005년에 광주광역시 남구 최초로 가정봉사파견사업 시범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나는 노후에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가정에서 서비스를 받을 대상자를 선발했다.


혼자 살고 있는 남자 어르신들을 우선 선발했다. 이○○ 어르신을 1호 대상자로 선정하고, ‘어르신에게 어떤 친구가 필요할까?’하고 생각하면서 광주 남구에 사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 중에 자원봉사자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르신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 어르신보다 13살이 적었지만 진짜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시던 분이었다. 김○○ 어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파견 일을 수락하셨다. 그렇게 김○○ 어머니는 김 요양보호사가 되셨다.


김 요양보호사와 함께 이○○ 어르신 댁에 처음 방문하던 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두 사람은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이○○ 어르신은 가정봉사사업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냥 집에 정다운 사람이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해하셨다. 그 시절에 혼자 사는 남자 어르신 댁에 여자 봉사자가 가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심 걱정하는 바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김 요양보호사는 40분가량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데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이 즐겁게 어르신들 돌보았다. 그 후로 이○○ 어르신은 아침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헤어질 때마다 아쉬워서 손을 꼭 붙잡고 놓질 못하신다고 했다. 아침 8시에 어르신 댁에 가셔서 아침을 챙겨드리고 쌓인 집안일을 한 뒤, 12시에 점심과 저녁을 함께 장만한다.


김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닭고기나 개고기, 국과 텃밭의 싱싱한 채소를 곁들인 밥상을 1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오셨다. 두 사람은 친구를 넘어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이제는 가족보다도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특히 김 요양보호사는 2016년에 남편과 사별했지만, 어르신이 있었기에 슬픔과 상실감을 비교적 빨리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도 했다.


어르신의 나이는 올해로 91세. 나이를 한 살 한 살 드실 때마다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걱정했지만, 김 요양보호사도 나도 어르신이 100세까지는 거뜬하실 거라고 자신한다. 이○○ 어르신은 일요일마다 5층에 있는 교회 계단을 걸어 올라갈 정도로 건강하고 정정하시니 말이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르신은 한결같으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얼굴에 새로 생긴 굵은 주름과 백발 정도랄까.


어르신의 건강 비결은 김 요양보호사의 정성 어린 돌봄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어르신이 100세가 될 때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최대한 오래오래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이 계속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최신뉴스 및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