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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경] 어느 모자와의 인연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어느 모자와의 인연


숫자, 통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존중하는 복지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신과 함께 2’라는 영화를 보았다. 내가 처한 상황 탓일까? 영화 속 몇몇 대사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나쁜 인간은 없어. 나쁜 상황이 있는 거지.”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의 입장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죽은 뒤에도 자기 자식이 지은 죄를 가슴 아파하며 염라대왕과의 거래를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 부모의 마음이 다 저렇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린다.


영화 속에서 현실 세계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가택신이 주식, 펀드를 했다가 돈을 잃게 되어 손자와 사는 할아버지를 돕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제 저세상의 존재들까지 펀드에 손을 대는구나 하는 생각에 요즘 말로 ‘웃펐다.’ 직업병이 발동했는지 이 영화 속에서 간간이 보이는 신체적·정서적·경제적 노인학대 상황이 턱턱 마음에 걸렸다.


사회적·복지적 역할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우리나라에 노인보호전문기관이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그간 우리는 학대피해자나 가해자의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벌어진 사연들에 아주 가깝게 다가서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노인만을 보호하는 기관이 아니라, 노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우리 사회의 아픔을 감싸 안고 갈 수 있는 기관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83세의 김 씨 할머니는 오늘도 변함없이 전화 하셨다. 할머니는 충남남부노인보호전문 기관의 특별 고객으로, 이렇게 관장인 나와 통화를 하신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항상 그렇듯이 큰아들과 관련된 가족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길게 하소연하시더니 “관장님, 내 전화 귀찮지유? 허지만 이 늙은이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은 관장님밖에 없어유~. 관장님은 나한테 부모 같은 분이어유.” 하신다. 이게 무슨 웃지 못 할 이야기인지. 자식뻘인 나에게 ‘부모’ 같다니……. 하지만 이웃도 자식도, 하물며 신고하면 달려오는 경찰마저도 할머니 집안 사정이라면 빠삭해서 할머니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20년 전, 김 씨 할머니의 남편은 위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길고 지난한 간병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할머니가 이혼을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얼마 후 남편은 헛간에서 목을 매 자살해버리셨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할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큰아들 내외는 ‘다 어머니 때문’ 이라며 할아버지의 죽음을 할머니 탓으로 돌렸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집 명의를 이전하는 문제로 자식들과 옥신각신하던 차여서 끝없는 갈등과 원망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큰아들은 어려서는 공부도 꽤 잘했고, 부모 말에도 순종하는 기대주 아들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일이라는 말처럼 10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자기 방식대로 농사를 짓겠다며 고향에 돌아온 뒤로부터 모친과 숱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큰아들은 술을 잔뜩 마시고 살림살이를 때려 부쉈고, 이제는 부모 집까지 차지하려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모든 원망을 큰며느리에게 쏟아 붓기 시작했다.


처음 우리 기관에 이 사건이 접수되었을 때도 할머니는 ‘큰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자기 아들을 망쳐버렸다’ 고 말씀을 하셨다. 큰아들은 날이 갈수록 포악해졌고 억척스러운 할머니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아들은 사흘이 멀다고 술을 마셨고, 술기운이 돌면 부모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으며, 자존심 강한 할머니를 자극하였다.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으니 급기야는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한 것이다. 이런 일이 무한 반복 되자 파출소에서도 늦게 출동하거나 성실한 태도로 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제 우리 기관을 통해 신고하셨다. 여러 번 사고들이 오갔고, 한 번은 아들이 할머니를 밀쳐서 허리를 다치는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되었다. 큰아들은 “세상 어디에 제 자식한텐 콩밥 먹이고 싶어 안달 난 부모가 있느냐? 무슨 부모가 동네방네 다니며 제 자식 흉을 보다 못해 죽일 놈을 만드냐”며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처음 우리 기관에 사건이 접수되었을 때 할머니와 큰아들 내외는 한 집에 살면서도 식사는 물론, 그릇도, 반찬도 모든 살림이 따로따로였고, 전혀 대화가 이뤄지지 않아 단절된 상태였다. 우리는 아들을 학대가해자로 보고 상담을 진행했다. 우리 힘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외부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보고자 했다.


심리상담사를 통해 아들과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건을 해결해보려 노력했지만 큰아들은 한 두 번 상담을 받더니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기관에는 발걸음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만이라도 계속 진행하자고 생각하여 1년간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할머니는 첫 회부터 큰아들 내외가 자신에게 했던 언행들, 며느리 때문에 딸들과 멀어진 이야기, 자기 남편이 죽은 원흉에 대한 이야기를 무한 반복 했다. 매번 상담 후에 방에서 나오는 상담사 선생님의 얼굴이 핼쑥해 보일 정도였다.


어느 날은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둘째 아들의 도움을 받아 퇴거명령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했지만, 큰아들 내외는 여전히 집에서 나가지 않았고, 우리 기관에서는 장기요양등급신청, 노인돌보미신청 등 지속적으로 사례관리를 해드렸다. 우리가 볼 때 그래도 이 가정에서 희망을 걸어볼 만한 사람은 큰며느리였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갈등 속에서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무던하게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원망이나 분노의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 전, 할머니에게서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뇨로 거의 죽을 뻔한 것을 큰아들은 방치했고, 딸네 집에 전화를 걸어 겨우 병원에 입원했다며, 다음 주에 퇴원하니 병문안을 오라는 것이었다. 며칠 뒤 병문안을 하러 갔을 때, 나는 변화한 할머니 모습에 깜짝 놀랐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큰아들이 자신에게 조금 살갑게 대해준다며, 마트에서 일하는 며느리도 퇴근 후에 과일 등을 사서 들른다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무한 반복 하시던 10년 전 이야기를 하지 꺼내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몇 주 뒤 퇴원하신 할머니는 다시 전화하셔서 2번이나 탈락했지만, 관장 ‘빽’ 으로 장기요양등급을 받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큰아들 내외와는 어떻게 지내시느냐 묻자 “똑~같아유. 내가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나쥬.” 하셨다.


할머니 댁의 일은 나에게 현재진행형이자 많은 고민과 안타까움을 안겨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 학대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가정 내 노인학대이고, 시설 내 학대 역시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서의 결과는 더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노인학대는 언제쯤이면 사라질까? 노인학대, 아동학대, 이런 사회적 문제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사회가 아닐까? 노인보호전문기관 결과 보고 기준에서 한 해에 종결한 사건 비율을 살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복잡한 인간관계를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좋은 것일까? 가정학대이든 시설학대이든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윤리적 신념을 가지고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매년 학대예방을 위해 그렇게도 많은 일을 하는 데 어째서 보고서에는 노인학대 발생률이 올라가야 일을 많이 했다고 인정을 받는 것일까?


복지현장에 몸담은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지만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숫자, 통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존중하는 복지를 실천하고 싶다고. 그래서 진심을 담아 서로를 응원하고, 어르신들이 살아온 과거를 이해하며, 삶의 마지막에 함께 해주어 아주 고맙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오늘 아침에는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둔 85세 할아버지의 생전 장례식을 다룬 인터넷 헤드라인 기사였다.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 에 지인들이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 참석하여, 풍선과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장소에서 임종 어르신의 요구대로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초대인사는 이러했다.


 “아니, 왜 꼭 죽은 다음에 장례식을 해? 어차피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거, 너무 슬퍼하지는 마시고. 오늘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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