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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사랑의 붕어빵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사랑의 붕어빵


사랑의 붕어빵이 지어준 따뜻한 우리집


‘따르릉~~’

이른 아침, 포항의 한 수녀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쓸 만한 탁자와 의자가 있는데, 혹시 필요하면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효경주간보호센터는 인력도, 재정도, 물품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스타렉스를 끌고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포항으로 달려갔다.


수녀원 진입로에 들어서는 데 웬 포장마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후원 물품을 실어 놓고 수녀님께 포장마차에 관해 물어보았다. 수녀님은 장애인 경사로 보수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포장마차라고 설명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아, 이거다! 붕어빵 포장마차를 열자’ 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지역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하던 중이었다. 달성군은 넓은 면적인데도 재가노인복지시설이라고는 우리 센터가 유일했기 때문에 돌봐야 할 어르신은 너무 많고, 센터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런 아이디어를 얻게 되어 너무 기뻤다.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과 의논하였다. 모두 솔깃해 하긴 했지만, 포장마차를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날 오후, 우리 시설의 봉사자 한 분이 고령 근처에서 물건을 실어 와야 할 일이 생겨 국장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연세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도로에 서 계셔서 차를 태워드렸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붕어빵 기계를 어디서 살 것인지 등 붕어빵 행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뒤에 타신 아주머니께서 ‘붕어빵틀이 필요하면 우리 집에 가 보입시더. 우리 아들 실직했을 때 붕어빵 장사한다꼬 사줬는데 얼마 안 쓰고 취업해서 지금 창고에 있을 끼라예’ 하셔서 곧장 그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녹은 좀 슬었지만 정말 붕어빵 기계가 있었고, 국장은 기뻐서 나한테 전화로 보고를 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쉽게 붕어빵 기계를 구하게 되었고, 너나 할 것 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풀어 녹슨 붕어빵 기계와 포장마차를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댔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에 힘든 줄도 모르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녹을 벗기고, 말끔하게 씻어 기름칠까지 마쳤다.


다음 날, 붕어빵을 굽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포장마차 운영을 실습하기 위해 성당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를 찾아갔다. 좋은 일에 쓰려고 한다며 우리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붕어빵 만 원어치를 시켜놓고 아주머니께 열심히 붕어빵 굽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붕어빵 포장마차 영업 첫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미리 물색해둔 장소로 포장마차를 끌고 가서 첫판을 구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붕어빵 굽기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불조절과 반죽 양 조절이 잘 안된 탓인지 물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입 먹어보니 속이 채 익지도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첫판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마음으로 정성껏 붕어빵을 구워봤다. 둘째 판엔 전보다 더 고소하고 바삭거리는 맛을 살려낸 것 같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 네 번째 판으로 이어질수록 더 바삭해지고 맛있어서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연습 삼아 굽고 또 굽고, 여러 번 반복해서 구운 붕어빵을 직원들과 동네 분들에게 맛보기로 나누었다.


어느 정도 굽는 기술이 손에 익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붕어빵’ 이라는 현수막까지 걸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붕어빵틀에 준비된 반죽을 조심스레 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빵틀을 돌리며 정성을 다해 뒤집기를 반복하자 노릇노릇하고 바싹하게 잘 구워진 붕어빵들이 나왔다.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가지런히 놓기가 무섭게 지나가던 주민들이 사가셨다. 점점 입소문이 나자 경로당, 마을회관에서도 사러 오고 배달 요청까지 들어오는 등 붕어빵은 불티나게 팔렸다. 사랑의 모금함에 천 원짜리, 만 원짜리 지폐가 속속 들어차는 게 보이자 힘든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사랑의 붕어빵을 구웠다.


오전에는 센터 일을 보고 점심을 먹자마자 붕어빵 포장마차로 나온다. 효경 주방장이 맛나게 만들어 준 어묵과 떡볶이도 벌여놓고 저녁 늦게까지 쉴 새 없이 붕어빵을 굽다 보니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몇 번이나 코피를 쏟고, 겨울에는 털신을 신어도 발이 얼어서 스티로폼 박스를 신고 빵을 굽기도 했다.


어느 비가 오던 주말 저녁, 붕어빵은 잔뜩 구워 놓았는데, 비바람이 몰아치자 아무도 사러 오지 않았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날따라 직원들과 봉사자들도 모두 일이 있어 혼자 포장마차를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세찬 비바람에 포장마차 천막이 기울어지면서 작은 전깃불이 꺼져버렸다. 순간 당황해서 허둥거리며 천막을 세워보려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아저씨 한 분이 지나가다가 안타까웠는지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간신히 포장마차를 정리해놓고 붕어빵을 세어보니 딱 80개였다.


그 순간 홀로 사시는 재가어르신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붕어빵을 몇 개씩 봉투에 담아 근처에 사시는 어르신 댁을 찾아다니며 돌리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을 깜짝 놀라면서도 반겨주셨다. 붕어빵을 다 돌리고 나니 저녁 8시가 넘어 배가 고팠다. 빵 굽는 냄새에 질릴 만도한데, 붕어빵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여름에는 얼음 식혜와 양념 닭똥집 구이도 팔고, 수녀원에서 생산한 무공해 메주 재료와 각종 장(된장, 쌈장, 간장, 고추장)도 원가로 떼어다 팔아서 수익금을 내기도 했다.


매주 금요일 간식 시간에는 주간보호 어르신들에게 붕어빵과 어묵, 떡볶이를 마음껏 대접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맛있게 드시고 고맙다고 하시면서도 원장이 이렇게 고생을 해서 어쩌느냐고 어깨를 토닥여주시기도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신이 나서 붕어빵을 구웠다. 몇 달이 지나자 자원봉사자 신청과 후원 신청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간의 고생이 눈 녹는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십 년이 넘게 효경과 인연을 맺고 봉사하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


하루 매출 십여 만 원 안팎, 재료비를 제하고 나면 7~8만 원 정도의 수익이 생겼고, 사랑의 모금함에는 평균 3~5만 원 정도가 모였다. 그렇게 2004년 10월부터 2006년 2월까지 만 2년 동안 열심히 사랑의 붕어빵을 구운 결과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100명을 발굴하게 되었고, 주간보호 어르신들 간식비와 부식비에도 보탬이 되었다. 또한 주간보호센터의 거실과 프로그램실이 비가 새고 낡아서 개조공사를 할 수 있는 2년짜리 정기적금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2005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소규모다기능시설 신축공모사업을 진행한다기에 신청서와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기쁘게도 신축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국고 지원금 3억8천만 원으로 105평 건물을 짓도록 계획했지만 우리가 붕어빵을 구워 마련한 1억6천만 원을 더해서 154평 건물을 짓는 것으로 사업계획서를 수정하였다. 그랬더니 보건복지부 담당자에게서 ‘자부담 1억6천만 원이 맞느냐’ 고 연락이 왔다. 다른 법인에 비해 자부담 비율이 높아서 혹시 착오가 아닌지 확인 차 연락을 했다고 한다.


집 지을 생각에 가슴이 뛰어서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나름의 설계 초안을 그려보았다. 공개 입찰 후 시공사 관계자에게는 ‘이 건물은 외롭고 허약한 어르신들이 살게 될 건물이고, 사랑의 붕어빵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과 수고해주신 분들 덕분이니 부디 잘 지어주세요.’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이후 사랑의 붕어빵 포장마차는 자금이 필요한 또 다른 이에게 전달되었다. 직원이 알고 지내던 한 학생이 포장마차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선물해주었다.


붕어빵 포장마차는 만 2년 동안 붕어빵을 맛있게 먹어주신 마음 따뜻한 지역주민들과, 열정만 넘치는 원장 때문에 물심양면으로 애써온 직원들과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의 붕어빵 포장마차는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에서 사랑으로 이어졌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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