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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경] 어려운 결정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어려운 결정


인권이 일상이 되는 날까지....


지적장애 2급인 78세 김 어르신은 충남 시골 마을에서 지적장애 2급인 30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어르신은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식당이나 모텔에서 잡일을 하거나 작은 텃밭에다 농사를 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절도사건으로 몇 건의 재판 과정 중이었고, 80세가 다 된 노모에게 생활비를 벌어오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벌금형이 내려지면 그 또한 어르신의 몫이 된다. 신기하게도 아들은 지적장애가 있는데도 돈에 대해서는 눈치가 빨랐고, 그만큼 지독한 집착을 보였다.


오늘도 청소하러 간 어르신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폭언을 쏟아내는 아들 때문에 모텔의 여주인이 우리 기관에 전화를 걸어왔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다. 우리는 모친에게 강제로 경제적인 요구를 하는 것은 노인학대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르신은 아들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적인 보호 의지를 보여 우리도 지자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르신의 남편은 돌아가시면서 집과 1억 원 정도의 현금을 남겼지만, 모두 아들 명의로 바뀌었고 김 어르신은 자기 명의로 된 통장조차 없었다. 우리는 경찰, 지자체 등 관련 기관들과 회의를 진행했지만 서로의 의견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어르신 본인이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데,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르신과 아들의 결정이 자신들의 행복을 해치고 있는데 어떻게 그 결정을 따를 수 있나요?”


“80이 다 된 김 어르신 인생에 아들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에요. 현금이 있기 때문에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이나 노인복지 혜택, 그 어느 것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문제에요.”


긴 시간, 수차례 논쟁을 벌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결국 우리의 바람대로 김 어르신과 아들을 격리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 날 모텔 주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 기관에 전화했다.


“오늘따라 얼굴빛이 너무 안 좋았는데, 청소하시다가 쓰러지셨어요.”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여 진찰한 결과 위, 십이지장 궤양 및 영양실조였다. 병원에서 깨어난 어르신의 첫 마디는 “이젠 아들과 못 살겠어. 내가 이렇게 아픈데 돈 벌어오라고 아침부터 날 채근하며 내보냈다니까.”였다. 우리는 내심 그 말을 반기며,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하에 어르신을 긴급으로 노인병원에 입원시켰다.


경찰과 지자체에 아들과의 분리를 희망하는 당사자의 의사를 전하며 어르신 보호에 들어갔다. 동시에 관련 기관 회의를 통해 어르신을 단독세대로 분리하여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행정처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우리 기관에 전화가 빗발쳤다. 군청 장애인과 및 노인복지팀이었다.


담당자는 아들이 군수실까지 쳐들어가서 자기 어머니를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렸다며 난감한 상황이니 해결을 하라고 우리 기관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사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분리를 시도했지만, 어르신이 아들과의 분리를 거부했고, 아들도 난동을 부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었다”며, “지적장애 아들의 난동에 난감하니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지만, 사실은 어르신을 다시 돌려보내라는 압박이었다.


우리는 그때 그 ‘몇 년 전 일’ 이 성폭력 및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해바라기센터와 관련된 일이었다는 것과 아들과 어르신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기관이 이 사례에 처음 개입했을 당시 동네 사람들로부터 듣게 된 미심쩍은 이야기들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사례 회의를 거쳐 불안해하는 김 어르신을 반복해서 설득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노인보호쉼터를 거쳐 양로시설에 들어가실 때까지 어르신은 매우 불안해 하셨고, 우리는 전문상담사를 통해 할머님을 안정시켰다.


이 사례를 보면서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인권은 그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인권은 이성과 양심의 기준’ 이라고 믿어왔는데…….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인정받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권리’ 라는 인권의 정의를 보면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너무나 추상적인 문구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어르신을 제대로 보호하고 옹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간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지자체의 결정과 태도에도 분노를 느꼈다.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국가를 대신하여 최일선에서,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사무업무를 위탁받은 대행기관으로써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일정 시간이 흐르자 어르신은 안정을 되찾았다. 아직도 나를 보면 제일 먼저 아들의 안부부터 묻는 어르신에게 나는 냉정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아드님은 여러 번의 작은 절도사건으로 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복역 중입니다. 아드님을 위해서라도 그곳에서 새로 교육을 받고 나와야 합니다. 어르신이 아드님을 정말 사랑하신다면, 본인의 건강과 행복을 먼저 챙기셔야 합니다.” 어르신은 눈물을 흘리며 그러겠노라고 고개만 끄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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