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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한 줄이 정신장애 환우 편견 해소했으면 좋겠어요

2016-12-12 입력 | 기사승인 : 2016-12-12

  봄의 빛에 쫓겨난 눈들처럼/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중략) 혹시 무심코 밟아/ 봄을 쫓는 다른 이가/ 이 녹색 아이를 찾지 못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모두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을 느끼고 저마다의/ 마음속 봄빛을 되찾았으면// 당신의 봄은 소중하니까 (시 ‘녹색 아이’ 중에서)

  조심스레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시인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그가 찾는 봄빛, 녹색 아이의 존재는 무엇일까. ‘녹색 아이’라는 제목 아래로 묵묵히 전해지는 노래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인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워져 있다. 그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고 했다.

  이 시는 정신장애 환우의 작품을 모은 시집 <겨울은 또 작은 행복을 준다>에 수록된 것이다. 국립나주병원(이하 나주병원)은 전남의 22개 시·군에 거주하는 60여 명의 정신질환자 작품 100편을 모아 시집을 출간했다. 지난 11월 23일엔 북콘서트를 열어 환우들이 직접 시를 낭송하고 사인을 한 책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도 마련했다.



<국립나주병원이 정신장애 환우들이 쓴 시를 모아 출간했다>


  나주병원은 정신과 단일 전문 의료기관으로 1956년 설립됐다. 병원이 환자 치료와 함께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정신장애 환우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이다. 이번 시집 출간도 이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윤보현 원장은 "‘나도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환우들을 보듬어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이야기를 전해왔다.

  시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나주병원은 2013년부터 전남·광주지역 정신장애 환우들의 시를 모아 전시하는 시화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이번에 펴낸 시집은 그동안의 결실을 모은 결과물이다. 시집 제목은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아픔이 사라질 거라는 희망을 노래한 환우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이 밖에도 가족을 기다리는 애틋함,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치유에 대한 열망 등을 이야기한 시들이 수록됐다. 나주병원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환우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기 위해 이 같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신장애 환우가 시를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온전히 황폐화됐다는 건 편견이다. 그들은 정신세계의 일부에 문제가 있는 것일 뿐 다른 부분은 일반인과 똑같다. 우리 병원에서는 환자의 상태와 능력에 따라 급성기와 회복기로 나눠 맞춤형 치료를 하고 있는데, 증상이 심한 급성기에 오히려 예술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았던 화가 고흐도 조증과 울증이 극에 달한 급성기 때 200여 편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이 같은 특성을 활용해 ‘예술 치료’를 하고 있다. 시뿐만 아니라 그림, 음악 등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환우들은 사회에 복귀한 뒤 재능을 살려 작품 활동을 계속하기도 한다."

  시집 출간 외에도 나주병원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해오고 있다
  "병원을 알리기 위해 올 9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으로 행복을 더하는 사진 공모전’을 개최했다. 한 달간 진행된 공모전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350여 점의 작품이 접수됐다. 뜻밖의 관심이었다. 병원 안에는 회복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난타 동호회도 마련했다. 이들은 외부에서 공연도 한다. 정신장애 환우들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이 국민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다. 또 병원에서는 정신건강 상담 부스를 운영해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나주시 정신건강증진센터, 광주시청, 인근 대학 등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참여한다. 매년 병원 자체적으로도 ‘나정(나주+情)’축제를 열어 정신건강 강좌, 음식 나누기, 영화 상영, 노래 자랑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정신병원의 모습을 접하기 어렵다. 병동 내 환우들의 생활이 궁금하다
  "나주병원은 총 600병상을 운영한다. 환자가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는 자의적 입원이 40%에 이르며, 이 경우 환자가 원할 때 언제든 퇴원할 수 있다. 가족의 의뢰에 의한 비자의적 입원은 3개월의 입원을 원칙으로 하며 보호자와 담당 주치의의 심사를 거쳐 퇴원을 결정한다. 입원 치료는 초기 약물치료 중심으로 이뤄지며 상담과 맞춤형 교육이 동반된다. 우리 병원은 모든 환우가 사회에 복귀해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퇴원이 얼마 남지 않은 환우들에게는 직업 재활훈련을 제공하고, 장기입원으로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병원 내 파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윤보현 원장이 시집 <겨울은 또 작은 행복을 준다>를 들고 있다>


  언론이나 드라마 등에서 정신병원은 흔히 우울한 곳으로 묘사된다
  "그런 점이 안타깝다. 우리 병원은 최대한 환우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 병원에 오면 많은 환자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입원 환자의 50%는 병원 생활이 자유로운 개방병동에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슈만의 마을’, ‘브람스의 마을’ 등 모든 병동 이름을 클래식 음악가의 이름으로 지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근에는 숲을 조성해 환우들이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환우들은 공예나 악기 연주, 영화 감상, 스포츠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고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 병원 생활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위로해주는 시간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감정 기복이 심할 때 등 경미한 정신건강 이상에도 정신과에 쉽게 방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직접 정신병원을 찾는 이는 드물다. 정신질환은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치료를 하는 게 중요하다. 일반인들 중에는 기록이 남는 것을 두려워해 치료를 꺼리는 이들이 많은데 상담만을 받는 경우는 기록이 남지 않고, 치료를 받더라도 본인 동의가 없이는 기록을 열람할 수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주병원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병원을 공개하는 1박 2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환우들이 어떤 치료 를 받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직접 체험해볼 수 있어 편견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신건강 종합대책 5주년 계획’ 발표 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의 계획은 감기 등으로 찾은 동네 의원에서도 정신건강 검사를 해서 조기에 질환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건강보험 수가를 개선하는 것, 강제입원 절차를 강화하는 것 등이다. 내년부터 계획이 시행되는데, 우리 병원은 ‘찾아오는 서비스’와 ‘찾아가는 서비스’ 투트랙으로 나눠 변화에 발맞출 계획이다. 찾아오는 서비스는 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소아-성인-노인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별 정신질환에 대해 진료를 더욱 전문화할 것이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정신병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데다 전남지역에는 의료 사각지대가 많다. 이에 우리 병원은 직장정신건강증진팀을 꾸려 지역사회의 기업과 협력해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상담을 진행하는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정신질환은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조기에 발견하면 생활습관이나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우리 병원이 아픔이 있는 누구나 거리낌 없이 찾아와 치유받을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글· 조영실(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제공·국립나주병원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게재된 내용으로 공공누리에 의거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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