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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딛고 인생 2막 시작한 인성교육 강사 송홍정 씨

2016-12-23 입력 | 기사승인 : 2016-12-23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오전. 3주 전부터 시작된 대학원(사회복지학) 인성상담 실습 강행군에도 송홍정(41) 씨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인생의 커다란 전환을 맞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2주 차까지는 흡연과 학교폭력으로 상담 처분을 받은 관내 8개교 중·고등학생들을 만나 상담했어요. 3주 차부터는 30여 명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성 강의를 시작해요. 제가 인성교육 강사라고 소개하면 아이들이 ‘선생님의 인성은 어떠냐’고 짓궂게 묻는데, 처음엔 당황했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웃어줘요. 이제 막 시작한 거라 상담 효과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송홍정 씨가 인성교육 강사가 되기 위해 취득한 수료증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은 채 활짝 웃고 있다.



  다시 일자리를 찾은 중년 여성의 마음이란 비슷하겠지만 송 씨에게 이 자리는 좀 더 각별하다. 보육교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해 초 갑자기 오른팔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기면서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됐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성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몸도 마음도 차츰 회복하는 중이다. 지난해 9월 부평여성새로일하기센터가 마련한 ‘인성코치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한 후 올해 9월엔 한 재단법인의 학부모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성교육 강사로 임명됐다. 11월 28일 경기 부천시에 소재한 한 상담센터에서 만난 송 씨는 "지금도 오른팔에 힘이 안 들어가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나의 타고난 건강한 에너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오른팔에 힘 빠지면서 보육교사 일자리 잃어

새일센터 인성 강사 양성과정 수료… 사명 깨닫고 대학원 진학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한순간이었다. 과일을 깎다가 과도를 놓쳤고,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발등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다. 어린이집에선 미역국을 배식하다가 국자를 떨어뜨려 아이의 식판을 엎었다. 국을 받으려 했던 아이보다 더 놀란 건 송 씨 자신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 기억을 더듬어봤다. 징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를 손에서 놓친 일이 있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의사는 출산 후 근육이 줄고 척추가 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그러다 보면 오른팔에 힘이 빠질 수 있다고, 앞으로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질 위험성이 더 크다고 했다.


  보육교사는 영유아를 돌보는 게 주된 업무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아이를 안고 업어야 하는 일이 많다. 한번 아이를 손에서 놓치면 아이 받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교사와 아이 사이에 교감이 없어진다. 소통도 사라진다. 송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를 품에 안아 눈맞춤하는 것은 고사하고 보육 일지에 글씨 쓰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보육교사로 계속 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선책을 마련해야 했다. 송 씨는 육체노동이 덜한 일자리를 알아보기로 했다. 일을 하려면 먼저 몸부터 추슬러야 했다. 척추측만증을 완화하기 위해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된다는 요가를 시작했다. 동작을 취하다가 심장에 무리가 간 모양인지 숨이 멎을 뻔했다. 밖으로 뛰쳐나가 숨을 몰아쉬는데 눈물이 찔끔 나왔다. 신기한 것은 절망 뒤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보니 게시판에 붙은 전단지가 보였어요. 인성 강사를 양성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강사는 주로 말하는 직업이니까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강의 첫날.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52개 ‘미덕의 언어’ 카드를 하나씩 뽑도록 했다. 송 씨가 뽑은 것은 ‘봉사’. 그날 봉사하는 마음으로 반장을 맡았다. 강의를 듣고 난 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처음엔 먹고살려고 인성교육 강사를 택했는데 그날 사명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팠던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던 거겠지’, ‘그게 나의 길이 되려고 그랬나 보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제 인생이 선물을 빼앗겼다가 다시 받은 게 아니라 하나 더 받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2개월간 인성 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석사) 공부를 시작한 그는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인성교육지도사과정을 수료하고, 인천시교육청에서 학생상담 자원봉사자 기초교육 연수과정을 이수했다.





▶송홍정 씨는 “몸이 아프고 한동안 절망에 빠졌지만 그 덕분에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인성교육 강사가 나의 길이 되려고 그랬나보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상담을 하다 내담자의 감정에 투사되는 역전이 현상이 잘 일어난다. 부모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을 만나면 그도 자신의 사연을 꺼내놓고 같이 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상담자이자 인성 강사로서는 약점이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하다"고 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몸도 마음도 약한 저에게 마음을 열어줘요. 물론 이 길을 가려면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아프고 난 후 인생·사람 대하는 태도 달라져

"고난 중에도 사람과 어울려야 일자리 찾아"


  그는 몸이 아프기 전 만난 사람과 아픈 이후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다고 했다. 몸이 아프기 전에는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프고 난 이후에는 사연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가정불화로 가족이 흩어져 지내는 사람,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 각방을 쓰는 사람, 우울증으로 대인기피증을 앓는 사람,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접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송 씨는 이들을 만나 수시로 안부를 묻고 내적 치유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추천해준다.


  "제가 겪어보니 결국 정답은 사람이더라고요. 어떤 고난과 역경을 맞았을 때 혼자 식음을 전폐하며 안으로 숨는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용기를 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상 밖으로 나와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건 인성교육 강사로 일하는 게 가끔 힘에 부칠 때마다 보는 파일이에요." 그가 보여준 파일은 인성교육 강사로 새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해온 자신의 이력을 모은 것이었다. 바인더로 묶인 지난날의 기록은 송 씨의 아픔을 잊게 해주는 약 같은 존재다. 그의 아픔과 치유가 모두 들어 있다. 파일을 바라보는 송 씨의 눈이 반짝거렸다.

글· 김건희 (위클리 공감 기자)/ 사진· 박해윤 기자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게재된 내용으로 공공누리에 의거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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