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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남] 한 번도 잠그지 못한 대문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한 번도 잠그지 못한 대문


김○○ 할머니는 100세를 넘긴 울산의 최고령 할머니셨다.


김○○ 할머니는 100세를 넘긴 울산의 최고령 할머니셨다. 100세가 되실 무렵부터 우리 센터(도담도담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기 시작하여 100세까지 ○년을 더 다니셨다. 우리 센터에 나오시기 전에는 복지관 1층의 경로당을 주로 다니셨는데, 매일 나오셔서 점심을 드시고는 무에 그리 바쁘신지 곧장 집으로 가시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 없는 손자 둘을 키우시느라 늘 바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새하얀 백발에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셨지만 눈빛이나 기력만큼은 젊은이 못지않게 쟁쟁하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할머니 나이가 많아야 80대일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웃 어르신을 통해 100세를 코앞에 두고 계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할머니를 관심 있게 살펴보게 되었다.


어느 날, 마음을 먹고 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 할머님 머리칼이 새하얘서 정말 매력적이세요. 근데 저는 80세나 되신 줄 알았는데, 곧 100세가 되신다고요? 이렇게 정정하신 비결이 뭐에요?”하고 여쭙자, 할머니는 의외로 한숨을 푹 내쉬며 “젊을 때 가난해서 먹을 것 찾으나 산으로 들로 돌아댕기면서 나물 캐다 먹고 산 것 밖에 없다 아이가. 산나물, 들나물이 보약인기라.”하셨다. 그리고 연달아 속마음을 풀어 놓으셨다.


“내한테는 중학생, 고등학생 손자놈들 있다아잉교. 불쌍한 내 새끼들. 어릴 때 어미 잃고, 아비는 어린 아들들 맡겨놓고 돈 벌러 간다꼬 배타러 가더니 10년이 넘어도 깜깜 무소식이라. 행여 자식이 돌아올까 봐 여태 대문도 한 번 잠근 적이 없소. 자나 깨나 아들 돌아오기만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이래 세월이 지나가브럿다 아잉교.”


한참 뒤에 주름이 가득한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시며 말을 이으셨다. “그래 나는 여태 눈을 못 감는기라. 아들 얼굴 한 번 보기 전엔 눈을 감을 수가 없고 말고…….”


할머니는 조손가정 수급에 의지해서 살고 계셨는데, 아무리 정정하셔도 100세가 다 되신 분이 손자 둘을 키우고 살림을 하시기는 무리였다. 해서 원래 치매 3급 이상 판정을 받아야 이용할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 이용을 우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해드렸다.


할머니는 큰 손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게 되어 작은 손자만 돌보면 된다며 매일 센터에 나오셔서 점심을 드셨다. 아침과 저녁은 복지관에서 오후에 배달되는 도시락 두 개로 해결하셨다. 빨래나 청소는 자원봉사자들이 번갈아 방문해서 해드렸는데, 봉사자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는 연세가 그렇게 많은데도 정말 점잖으시고 단정한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빨래도 항상 구분해서 봉사자들이 일하기 쉽게 해 놓으셔서 한 번도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센터를 떠난 뒤 몇 년이 지나고, 우연히 지난 대통령 선거 때 107세 최고령 투표 할머니로 언론에 소개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웃 젊은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시는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해 보였다. 하지만 화면에 비친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돌아왔다면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환하게 미소 띤 얼굴로 투표소에 나오셨을 텐데…….


사라진 아들은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을까?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너무도 먼 것 같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이나, 살아 있어도 한 번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이나.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올까 한 번도 대문을 잠그신 적이 없다던 할머니. 할머니의 대문처럼 부모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있는데, 자식들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식 된 내 모습을 돌아보니 나 역시 마냥 떳떳하지만은 않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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